所謂修身(소위수신)이
이른바 몸을 닦음이
在正其心者(재정기심자)는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身有所忿懥(신유소분치)면
자신에 노여워하는 바가 있으면
則不得其正(칙불득기정)하며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有所恐懼(유소공구)면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則不得其正(칙불득기정)하며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有所好樂(유소호락)면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則不得其正(칙불득기정)하며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有所憂患(유소우환)이면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則不得其正(칙불득기정)이니라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
心不在焉(심불재언)이면
마음이 있지 않으면
視而不見(시이불견)하며
보아도 보이지 않고
聽而不聞(청이불문)하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食而不知其味(식이불지기미)니라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니라.
此謂修身(차위수신)이
이것을 일러 몸을 닦음이
在正其心(재정기심)이니라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느니라.
註釋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신유(身有)의 신(身)은
마땅히 심(心)이 되어야 한다.”
○ 빈치(忿懥)는 노(怒)함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용(用)이니,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이것을 두고 살피지 못하면, 욕심이
동(動)하고 정(情)이 치우쳐서, 그 용(用)의 행하는
바가 혹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보전되지 못함이 있으면 그 몸을 검속(檢束)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반드시 이를 살펴서
경(敬)하여 마음을 곧게 하니, 그러한 뒤에야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서 몸이 닦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 또한 위 장(章)을 이어서 아래 장(章)을 일으킨 것이다.
뜻이 성실해지면 참으로 악(惡)이 없고 진실로 선(善)이 있을
것이니, 이 때문에 능히 마음을 보존하여 그 몸을 검속(檢束)하는
것이다. 그러나 혹 다만 성의(誠意)만을 알고, 이 마음의
보존되고 보존되지 않음을 치밀히 살피지 못한다면,
또 안을 곧게 하여 몸을 닦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이하는 모두 옛 글을 옳은 것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