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나카소네
세계일보 [설왕설래] 100세 나카소네
세계일보 원문 l 입력 2018.05.28 21:42 l 수정 2018.05.29 01:18
고구려 장수왕.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그의 이름은 거련(巨璉)이다. ‘삼국사기’ 장수왕 79년(서기 491년)의 기록. “12월 왕이 돌아가니 나이 98세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긴 79년이나 왕위를 누렸다. ‘위서’ 기록은 좀 다르다. “연(璉)이 숨지니 나이 100여세였다.”
왕위를 이은 사람은 손자인 문자명왕 나운(羅雲)이다. 아들 조다(助多)는 아버지보다 일찍 숨져 고추대가로 남았다.
오래 산 왕으로는 조선 영조도 손꼽힌다. 82세로 숨질 때까지 52년간 재위했다. 사도세자 선(?)이 뒤주에 갇혀 숨진 때는 재위 39년 되던 해다. 2년 후 영조가 남긴 말, “모두가 효경(梟?·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을 말하지만 자신이 효경이요, 당습(黨習·당파 악습)을 말하지만 자신이 당습인 것을 모른다.” 조다와 다른 사도세자에 얽힌 아픈 기억은 그때까지 남았던 걸까.
영조 시대 이웃 청나라에는 건륭제가 있었다. 오래 살기로 말하자면 그도 역대급이다. 88세까지 살았다. 재위 60년. 숨지기 4년 전 황제 자리를 열다섯 번째 아들에게 물려줬다. 늙어 버린 형들은 계승 순위에서 뒤졌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장수왕은 고구려 전성기를 열었다. 영조는 탕평으로 조선을 부흥시켰다. 실사구시를 외친 실학이 움튼 것은 그때다. 건륭제 시대는 청 제국의 전성기다. 호학(好學) 군주인 그는 역사상 최대 문화사업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했다. 연암 박지원이 청에 가 문화 충격을 받은 것은 건륭제의 칠순잔치 때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27일 100세를 맞았다. 지금도 한 주에 2∼3번씩 사무실에 나간다고 한다. 장수 비결? 비서는 말했다. “운명에 순종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나카소네는 일본산 상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1980년대 일본을 이끈 인물이다. 우리나라와 친하고자 애썼다. 노정객이 말하는 “운명”, ‘갈등을 넘어’ 역사를 바라보는 혜안을 담은 말은 아닐까. 갈등을 일삼은 정치인이라면 마음의 안정을 운명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그가 장기집권을 했다면 일본은 어찌 변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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