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의신온고지신]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공의(公義)의 삶을 사는 사람. 세상은 이를 의인이요 선각자라고 부른다.
그렇다. 매화는 지조를 굽히지 않는 참된 선비처럼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대로이고(月到千虧餘本質),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柳經百別又新枝).” 조선 중기 문신 신흠이 문집 ‘야언(野言)’에서 매화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대하는 자연 만물의 고고한 특성을 일러 찬탄한 말이다.
사실 나라를 잃어버린 시기 등 질풍노도 같은 난세에 매화처럼 꿋꿋하고 향긋한 현인달사들이 그립다.
아니 그들의 강인하고 먼 미래를 위해 산 공생애적 삶을 추모하고 계승해야 한다. 우리 민족 영원한
불멸의 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긴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란 시는 충무공이 왜구를 무찌르고 경각에 달린 조국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꿋꿋하고 용맹한 자세로 임했는가를 알 수 있다.
바람 속에서 식사를 하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이룬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힘든 삶의 상징 같은 백범
김구 주석이 즐겨 쓴 한시는 단심의 민족혼에 감명 받게 해 후세인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시 ‘눈 덮인
들판을 걸으며(踏雪野)’는 이렇게 울림을 준다. “눈 덮인 들판을 밟으며 지날 때면(踏雪野中去)/ 발걸음을
모쪼록 어지러이 말아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은(今日我行跡)/후세인들이 따르는 이정
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
안중근 의사가 살았을 때에 써 둔 필적인 유묵엔 기상이 넘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爲國獻身軍人本分)”는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 안 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
았던 일본 헌병 지바(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준 것이다. 지바 간수는 안 의사의 의연함을 흠모했다. 오늘은 상
하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다. 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자.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遂作後人程 : ‘후세인들이 따르는 이정표가 된다’는 뜻.
遂 따를 수, 作 지을 작, 後 뒤 후, 人 사람 인, 程 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