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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식한 어머니

염경수 2017. 8. 27. 14:33






고향마을 이장이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땅에 도로가 나는데 340평 들어갑니다. 계약하시러 와야 합니다."


고향에는 어머님이 막내 아들과 살고 계십니다.

 옛날 구 가옥을 헐고 새로 지어 드린지가 벌써 30년 넘어 여기저기 고쳐야 할 곳이 많은 고향 집에,

어머니는 아끼신다고 보일러도 잘 않트십니다.


어머님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으세요?"


제 부친께선 60도 못 넘기시고 세상 뜨셨습니다.

어머님 50대에 홀로 되셨습니다.

아들의 질문에 당황하셨는지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제 손을 잡으시며......

"애비야. 너희들이 잘 해줘 이만큼 사는데....네 아버지가 지난 꿈에 나타나더구나!

 낮선 사람이라 한참을 바라보니 네 아버지더구나...."


저는 돌아앉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늙은 어머니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뭐 그리 바뿐지 배려 못하고 산 삶을 후헤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슬하의 5남매가 홀로 계신 어머님 보실핀다고 해왔지만....

정작 어머님의 마음에는 떠나신 아버님의 생각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어머니! 이번 땅 보상 받으면 낡은 집 새로 장만 할께요"

"그리 말어 내가 얼마나 산다고...."

"아니예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사시던 저 사랑채 다시 꾸며 옛날 처럼 만들어 볼께요"


저의 어린시절은 삼대가 한 집에 살았습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은 안채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은 사랑채에 붙은 건너방에서 사셨기에

그곳은 어머님의 젊은 시절 추억의 장소입니다.

헐지 않고 보관 해 온 그 구옥은 어머님의 젊은 시절, 아버님과의 추억의 장소입니다.

고향집을 지을 때 안채는 헐어 새로 짖고 사랑채는 이다음 내가 와서 살려고 그대로 남겼습니다.


저희 할머님은 막내 낳으시다 돌아가시고,

큰 아들이신 우리 아버님이 어린 나이에 살림하게 하시려고 일찍 장가들이는 바람에

울 어머니 16세에 시집 오셨습니다.


가난한 외가댁에서 공부도 못하시고 시집 오셔서 층층시하,

시어머님 않계시므로 시동생 시누이 4남매 키우시면서 사셨습니다.


시어른들과 대 식구와 사시느라고

아버님과 손 한번 변변히 잡아보지 못하시고

아버님은 6.25에 군에 입대하셔서 5년여를 군에 계시고....


어머님은 동네에 생긴 교회를 다니시면서 한글을 깨치셨습니다.

우리 가문중에 저의 윗대로는 대학을 공부한 사람은 저 뿐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무슨 말씀하시면 "어머님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하고 무시하곤 했습니다.

한 마디로 어머니 이시지만 무식하신 어머니인 것입니다. .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주 부끄러운 추억은......

고등학교시절 방하 때 집에 내려가 있을 때 입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화가나서 어머님께 "어머니 무식한 소리 마세요"! 하면서 화를 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비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집에 와 보니 어머님이 아무 말 없이 툇마루에 눈을 감고 앉아 계셨습니다.


며칠 지난 후 어머님이 저를 부르시고 곁에 앉게 하신 다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얘야! <미워>하고 소리 치면 다시 <미워>하고 메아리가 오고

  < 좋아> 하고 소리치면 <좋아> 하고 메아리가 돌아온단다"


아니 무식하신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우리 어머님은 무식하시지만 지혜로우신 무식입니다.

저는 어머님의 그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있어서 늘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구 가옥인 사랑채는 방이 두칸 있고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같이 있습니다.

지금도 흙 벽이며 석가래는 검은 색으로 변해 있습니다.

옛날 처럼....

구둘깔고 흙으로 바닥 마무리하고

콩물로 장판 하고

한지로 흙벽 도배하고

석가래 살리고...

외양간 자리는 송판으로 마루깔고,

어머니의 손때 묻은 화장대며 반닫이며 반짖그릇 진열하고....

조그마한 책상 두고 아버님이 군에 계실때 틈틈이 그리셨던 그림하며...

.65년전 휴가에 나오셔서 사진관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이렇게 찍은 흑백사진 걸어놓고....

아래동생 홍역으로 어머님 품 떠날 때 시겼던 버선 한짝 넣어두고....


--어머니 ! 나의 어머니 --

어머니와 장에 가면 동생이냐고 묻던 시장 사람들

18세에 날 나으시고...

대 식구에 짖눌려 아들 한번 번번히 어우르지 못하셨던 울 어머니!


그 고운 자태는 세월속에 흘려 보내시고....


지금은 귀도 어눌하고

손등은 세월이 내려 앉아 고랑이 깊어 있네

쪽진 머리는 흩으러져 앞 이마를 가리우고

무너진 무릎은 작대기처럼 딱딱한데

나를 먹여 주시던 젖 무덤은 말라 가슴에 붙어 있네


그 어머니이 목소리는 지금도 청량하고

그 한마디 충고는 태산처럼 묵직하고

그 깊은 시선은 깊이를 측량할 길 없네

세상 지식에는 무식이지만 세상 이치에는 지혜이시네


어머니 금년도 잘 넘기세요.

집지어 드릴께요

"두껍아 두껍아 내집 줄께 네 집 다오

 우리 어머니 모시게 네 집 다오."



 


출처 : 종소리울리네
글쓴이 : 이종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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