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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을 터치하자

염경수 2020. 10. 30. 16:52

참 마음을 터치하자 / 욥기

 

욥32:6~10, 마음을 터치해주는 사람 엘리후 | 욥기

2020. 10. 30. 04:30

◈참 마음을 터치하자        욥32 : 8~10  

 

금세기 미래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John Naisbitt는 「Megatrend」라는 책에서

향후 미래 사회를 결정지을 거대한 주류를 다음의 열 가지로 예견해주고 있습니다.

① 근세기 산업사회는→ 이미 정보화 사회로 나가고 있다.

② 양자택일의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다종 선택의 사회로 전환한다.(창고형 대형 마켓의 대중화)

③ 국가적인 단일경제에서→ 세계경제로 전환한다.(글로벌 사회의 다국적 기업으로 전환)

④ 단기전망의 사회에서→ 장기전망의 사회구조로 재편된다.

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 조직으로 개혁되어 나간다.

   (지방자치제와 소수민족 부족주의 국가형성)

⑥ 조직사회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전문점, 전문병원, 전문기관 선호)

⑦ 대의 민주주의 정치구조에서→ 참여 민주주의로 전환한다.(구경에서 참여자로)

⑧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수평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개미구조’ 한 마리 여왕벌이 지배 에서 거미 시스템으로)  

⑨ 공업도시를 떠나→ 전원도시에로의 지역적 대이동이 일어난다.

⑩ 미래 흐름은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라는 두 방향으로 동시에 흐른다.

 

특히 21세기 하이 테크놀로지 기계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도 사랑의 하이터치가 필요합니다.

 

21세기는 메탈 문명에서→ 멘탈 문화로,

fact 시대에서→ felt 시대로 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멍들고 찢어진 가슴을 치유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제 4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후입니다.

 

그가 출현함으로 욥기의 전환은, 32장부터 새롭게 이루어집니다.

 

엘리후는 그 동안 친구들한테 너무나 가혹한 공격과 상처

를 받아 마음이 꽁꽁 닫힌 욥의 마음열기 작업을 성공시킨 

훌륭한 상담자입니다.

욥의 차가운 가슴을 따뜻하게 치유해준 상담자입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이해해주고,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가슴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대로 욥의 친구들은

거침없는 하이 킥으로 언어폭력을 일삼아왔습니다.

 

그래서 욥은 더욱 악바리가 되어 있었는데,

혜성같이 등장한 엘리후가, 욥의 가슴을 터치해주므로

욥의 마음이 눈 녹듯이 부드러워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들은,, 공의로우신 율법적 하나님

만 강조했다면, 엘리후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특히 36장 전체에서는 욥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확신시켜 줍니다.

엘리후는, 이렇게 따뜻한 말을 통해 얼어붙은 욥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욥 형님, 당신의 고통 배후에는

당신을 복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신 것을 잊지 마세요.」

 

따라서 엘리후의 호소는 37장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기묘하심을 기대해보라는 감동적 호소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확신시켜줍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합니다.

 

엘리후가 얼마나 따뜻한 가슴의 대화자였으면

욥이, 32~37장까지 엘리후의 긴 이야기를 다 들었을까요?

 

욥기 31장까지의 구조는 서로 공방전입니다.

서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되받아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엘리후의 말에는, 모두가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듣습니다.

 

엘리후, 그가 얼마나 훈훈하게 가슴을 터치해주는 따뜻한

성품의 사람이었으면 그랬을까요?

 

오늘 우리도 어떻게 하면 사람의 가슴을 터치해주는 성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1. 다 듣고 난 후에, 말합시다.

욥의 친구들은 그동안 차가운 이성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소위 head language를 썼는데, 엘리후는 가슴의 언어, heart language로 말합니다.

 

세 친구들의 말은 거칠고 난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급하게 단정하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자신의 인품으로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며 말합니다.

 

현대인들의 큰 약점은 욥의 친구들처럼 말이 급합니다.

거칠게 말합니다. 날카롭게 말합니다.

그래서 비인격적으로 공격하는 말을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에 비하여 엘리후는 오래 기다린 후에 성숙한 인격으로 말합니다.

본문 32:4절과 10절의 내용입니다.

 

4 그들 가운데서 엘리후가 가장 젊은 사람이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

 

10 그래서 나도,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조급하게 끼어들지 않고, 신중하게 자기 의견을 표명합니다.

말할 기회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예의를 갖추어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인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리후의 성품에 얼마나 머리가 숙여지는지

그는 한참동안 기다린 후에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며 경청하였는지

2장부터 31장까지의 모든 내용을 다 듣고 난 후에, 따뜻한 가슴으로 말한 것입니다.

엘리후의 경청하는 자세는 존경스럽습니다.

 

그렇습니다. 급하게 말할수록 머리에서 나오고,

천천히 말할수록 가슴에서 나옵니다.

 

저부터도 말을 급하게 할수록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할뿐,

가슴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특히, 남의 말을 중간에 잘라서,

급하게 자기주장을 펴서는 안되겠습니다.

 

혹시 비판과 헐뜯는 말이 먼저 나온다면

그것이 곧 당신의 인격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숙한 인격으로 말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객관적으로 말합시다.

엘리후는 자기 개인생각을 주입하는 대신 모든 것을 객관적

으로 해석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세 친구들뿐만 아니라 욥의 문제점까지도 적나

라하게 분석하며 지적해줍니다. 32:9~10

 

엘리후 자기는, 나이도 어리고 인생의 연륜도 짧지만

자기 의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하며 말합니다.

특히 자기는 상대방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워주려는 뜻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안심시켜줍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너무나 주관적인 말을 쉽게 합니다.

자기 주장, 자기 철학, 자기 사상, 자기 방법을 주입시키려고

합니다. 특히 율법적인 신자일수록 자기 주관이 지나치게

세고 강합니다.

 

미숙한 사람일수록 주관적이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객관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깊은 가슴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감동적으로 말합시다.

엘리후가 말하는 모든 내용은 개인적 사견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그가 세 친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그는 성령께서 자기 심령에 깨달음을 주신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공감을 끌어내며 대화를 열어갑니다. 32:8

   8 그러나 깨닫고 보니, 사람에게 슬기를 주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욥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은 뜨거운 가슴으로

말합니다.(32:18) 18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말을

참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어느 한편만을 두둔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순수한 동기를 설명합니다.(33:3~4)

   3  나는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내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가슴으로 소통하는 훌륭한 대화자입니다.

서양 격언처럼 ‘한 갤런(약4리터)의 쓴 약보다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드럽고 훈훈한 가슴의 언어가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무정한 시대에 카타르시스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힘을 내는 가슴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옥 목사님은 카타르시스 목회를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가슴의 감동을 받고 싶어 합니다.

컴패션이라는 긍휼사역 선교단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서목사님은

너무나 훌륭한 감동의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든지 꼭 필요한 상황에서, 눈물을 보여주는 카타르시스의 사람입니다.

 

저부터 이런 사랑의 성품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4. 희망적으로 말합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세 친구들의 말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잔혹했습니다.

지나치게 율법적이었습니다. 정죄 그 자체였습니다.

그야말로 언어폭력이었습니다. 절망만 시켰습니다.

 

그런데 엘리후의 말은, 불안과 탈진상태에 있는 욥에게 안정감을 갖게 해 줍니다.

신뢰감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줍니다.

희망을 품게 합니다. 이것이 32~37장까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엘리후는 욥으로 하여금 크고 좋으신 하나님을 대망하게 합니다.

즉 모든 것을 회복해주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의 은총으로 행복을 회복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복음을 말해줍니다.(33:26)

   26 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엘리후의 상담은 욥에게 두 가지 M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Mercy of God is great.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크다.

-Majesty of God is great. 하나님의 장엄하심이 크다.

 

그래서 엘리후는 37장 결론에서 이렇게 희망찬 결론을 내립니다.(22~24절)

 

『하나님은 찬란한 금빛 광채로, 북쪽 잿빛 하늘을 밝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희망적이고 복음적입니까?

욥으로 하여금 미래 회복을 기대하게 해주는 완벽한 치유상담입니다.

그야말로 가슴을 터치하는 성품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내용을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하고 싶습니다.

 

첫째,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

욥의 세 친구들은 벌을 주는 말을 했다면,

엘리후는 복을 주는 말을 합니다.(33:29~30)

 

우리는 어떤 말을 하며, 어떤 말을 들으며, 어떤 단어를 구사하며,

얼마나 긍정적이며 복된 표현을 주고받고 사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욥기 32장은 훌륭한 상담자 엘리후를

아무 멋지게 소개하면서 내용을 전개합니다.

 

본문 32:2절을 봅시다. 엘리후는 바라겔의 아들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합니다.

아버지 바라겔의 이름은「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엘리후라는 이름은 「그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종합적 의미는 『나를 축복하신 하나님이 너도 축복하실 거야.』

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욥에게 최대한 축복의 말을 해준 것입니다.

 

둘째, 은혜로운 말을 합시다.

성령의 사람은 말에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말에 활력과 생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를 꺾지 않고 기를 세워주는 말을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이기려는 말을 즐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일으켜주는 말을 합니다.

상대방의 기세를 꺾기 보다는, 세워줍니다.

 

다같이 하십시다. “이기려하지 말고, 일으켜줍시다. 기를 꺾지 말고, 세워줍시다.”

 

그래서 잠15:4절에서는『따뜻하고 부드러운 혀, 곧 은혜로운 입술은

생명나무와 같이 죽을 사람도 살려낸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입술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복된 혀가 되기를 바랍니다,

치유와 은혜, 축복의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은혜 받은 만큼, 은혜로운 말을 합니다.

 

▶정리하면,

이처럼 엘리후가 등장함으로

깊은 영적 침체와 탈진에 빠졌던 욥이 드디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엘리후는 성령의 감동으로 욥의 내면세계를 치유해줍니다.

그의 멍든 가슴과 골이 패인 앙금이 치유 받을 준비를 시켜줍니다.

 

욥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도록 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 은총을 대망하도록 준비시켜준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인생의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밝은 새아침이 온다는 희망을 심어줍니다.

고통의 밤 저 건너편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새벽이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즉 삶의 질곡을 통과하기만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보상

은총이 주어짐을 내다보라는 희망의 복음을 말해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모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흘러 넘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지식적으로, 교리적으로 잘 가르쳤으나 가슴을 터치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자존감마저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축복과 은혜가 흘러넘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친 영혼과 상처 받은 가슴을 어루만져주시고 보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모두가 은혜

를 받고, 압박과 억눌림에서 고침 받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가슴을 터치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옮겨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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